20대 때 고향인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인 1990년 B형간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특별한 치료약이 없으니 무조건 쉬고 술은 절대로 마시지 말고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라고’ 했다.
전염 시킬 염려가 있고 치료를 해야 하니 직장을 쉬는 게 좋겠다고 했다. 10년 만에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 왔다.
잠시 쉬면서 간에 좋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찾아서 먹었다. 한동안 편히 쉬니 몸은 조금씩 나아졌고 간기능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취직을 하고 술과 담배도 하루 한 갑 정도의 옛날 생활로 돌아왔다.
또 몇 년의 시간이 흐른 1996년 모처럼 간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명한 내과의원을 찾았는데 이상 징후가 보이니 CT 촬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과는 ‘당장 서울병원으로 올라가 입원하라’였다.
이미 간암 수치(AFP)가 45,000까지 올라가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제주 내과의원에서 보낸 CT소견서와 필림을 본 전문의는 입원수속을 하고 사흘 후에 동맥조영색전술을 받게 될 것이라고만 말하고 나갔다. 의사를 따라 나간 아내의 젖은 얼굴을 보고 알았다.
간에 3cm 가량의 암 덩어리가 세 개가 보인다고, 수술은 불가능하니 색전술로 암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그날 밤 서른다섯 나이에 이제는 죽는구나하는 생각에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니 어찌나 서글프고 한스러웠던지...,
색전술을 한 날 저녁부터 억지로 음식을 삼켰다. 열심히 먹고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강해서였는지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고 3개월 분량의 두툼한 약 봉지를 들고 다시 제주도로 내려왔다.
BRM연구소, 그리고 식이요법과의 만남
BRM연구소를 만난 것은 그 즈음의 일이다. TV를 보던 아내가 “저기 한 번 가보자”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암의 진행을 중단시키기 어렵다고 했는데 , 저런 강좌에 가면 뭐하느냐는 회의가 들어, 결국 아내 혼자 강좌를 듣고 왔다.
아내의 설득에 식이요법을 하기로 결심하고 병원에서 준 약부터 버렸다. 식이요법만 철저히 해 볼 작정이었다. 1년 동안은 정말 열심히 매달렸다. 외출을 삼가고 철저히 BRM연구소의 식단대로 생활하였다.
식이요법 한 달 만에 암덩어리가 줄어들다
식이요법의 효과는 생가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한 달이 지난 후 검사를 받았는데 암덩어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효과가 보이니 더 열심히 식이요법을 했다. 하는 도중 병원의 권유로 색전술도 3번 더 했다.
1997년 2월 세 번째 색전술을 마친 후 주치의는 암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크기가 매우 작아졌다며 일을 해도 좋다고 했다. 7개월 뒤 마지막 색전술을 받은 이후 검사하니 몸에서 암덩어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처음 찾았던 제주도의 내과의원에서는 내 사진을 보고 “어떻게 암이 다 없어질 수 있냐?”며 놀라워했다. 다음해 4월에는 새 일자리도 구했다. 그 후 10년 가까이 버스운전을 하다 3년 전부터는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 아들, 딸은 어엿하게 자라 20대가 되었다.
BRM연구소에서 알려준 식이요법은 지금도 변함없이 지킨다.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여 미리미리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보통 색전술이라 함은 동맥을 막아 간암세포의 영양 공급을 차단하는데, 20%는 문맥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므로 식이요법 등으로 문맥을 막아줘야지만 완벽하게 암세포가 자라는 것을 막을 수 있다.